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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대 체험수기 당선작품 안내
    • 등대 체험수기 당선작품 안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2-05-23 10:10
      조회수 1033
      파일
    부산지방해양수산청에서 바다의
    날을 맞이하여 공모한 등대 체험수기 당선작입니다.



    십년만에
    끝난 여행



    경북
    구미시 인의동 한광분




    가덕도는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은
    섬이었다. 패총과 선사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글을 보아서도 아니고,
    남단의 동쪽 해안 절개지 위 80여 만평에 동백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고
    해서도 아니었다. 황지연못에서 솟아 나오는 물이 낙동강 1,300리 길을
    굽이쳐 흘러 이르는 바다, 그 남해바다 가까이 가덕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가덕도의 등대 체험숙소를 개방한다는
    소식을 친구로부터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수술을 받고 병원에 누워 있었다.
    지난 해 교통사고가 나서 일 년을 넘게 버텨오다가 목에 금속핀을 고정시키는
    디스크 수술이었는데, 당분간 먼 여행은 무리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친구는 언젠가는 가볼 수 있을 거라고 열심히 자료들을 모아 주었지만,
    기한을 약속할 수 없는 가덕도행에 대한 연기된 꿈은 커다란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여행 없는 삶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사고나기 전까지 다니던 등산은 버릴 수 있었지만, 여행만은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장시간 자동차 운전은커녕, 대중교통 수단조차
    내겐 힘겨웠다. 한 시간 이상을 앉아있지 못했고, 걷거나 산을 오르는
    일은 꿈조차 꿀 수 없었다. 수술한 목뿐만 아니라, 허리와 무릎까지
    다쳤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실정이었다.



    나는 누워서 낙동강 탐사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발원지인 황지연못을 시작으로 물줄기를 따라 내려오다 안동의
    하회마을에서는 모터보트를 이용해 을숙도까지 긴 시간을 낙동강 물줄기에
    바쳤던 시절을. 낙동강에 대한 내 마지막 목적지는 가덕도였고, 금상첨화로
    섬의 가장 남쪽 끝에 있는 가덕도등대의 숙소개방 소식은 그래서 내게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낙동강 탐사의 마지막을 앞두고 사고가 난 운명에
    화가 났고, 여행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더욱 화가 났다.



    수술을 하고 몇 개월이 지나자 나는
    죽어도 하고 싶은 여행은 해야겠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할 수 없이 도와준다는
    약속은 받았지만,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인터넷을
    뒤져 가덕도 등대 체험숙소에 등록을 해버렸다. 고정해 놓은 금속핀이
    혹시라도 튀어나와 내 신경을 눌러 하체를 마비시켜도 좋다는 생각만
    했다. 대신 가덕도 전체를 탐사할 계획은 축소되어 등대에서 하룻밤을
    묵고 오는 것으로 하자는 친구의 말에 동의할 뿐이었다.



    등대 체험숙소 신청을 해놓고 오래
    기다렸다. 그 동안 틈틈이 가덕도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고,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가덕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등대에서 하룻밤
    자고 오는 것으로 기대를 대신해야 했다. 딸아이의 학교에도 미리 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해 놓고, 직장에 다니는 친구에게도 몇 번이고 그 날 하루를
    위해 열심히 일 하라고 다짐을 주었다. 물론 긴 여행을 위한 몸 관리를
    위해서 꾸준한 치료를 받았고, 누워서 긴 시간 책도 보지 않았다. 철저하고도
    외로운 시간싸움은 가덕도에서 허가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받고 더욱
    치열해졌다.



    드디어 내 사랑하는 아이들과, 친구와
    그녀의 딸, 그리고 나와 함께 일을 하던 동료와 가덕도로 향했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내내 누워서 가야하는 여행이었지만, 십 년 만에 이루어질
    낙동강 탐사의 끝을 보기 위한 염원 때문에 스쳐 가는 풍경을 놓친 것이
    아깝거나 억울하지 않았다. 빨리 용원선착장에 닿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달리 자주 휴게소에 들러 쉬게 하는 배려조차 나는 불만스러웠다. 중앙과
    구마, 남해 고속도로를 번갈아 갈아타며 용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온
    몸이 아파서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아프다고 하면 가덕도로 들어가는
    배표를 끊지 않을까 걱정되어 표현할 수 없었다. 다행히 가덕도로 들어가는
    배 시간까지 한 시간 이상 남아있어 나는 횟집에서 쉴 수 있었다. 염치
    불구하고 차지한 식당 한 구석에 몸을 눕히고 사람들 몰래 약을 먹었다.




    한 시 간 가량을 가야 하는 배 안에서도
    나는 등을 기대고, 몸을 눕혔다. 마음 같아서는 따스한 볕이 내리쬐는
    바다를 보고 싶었지만, 낙동강 물줄기가 섞여 화합해 있을 가덕도 남쪽
    바다를 보기 위해서는 몸을 잠시라도 아껴두어야 했다. 드디어 가덕도의
    마지막 마을인 대항에 배가 도착했고, 나는 조심스럽게 땅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친구와 동료가 내 양쪽에서 부축을
    하며 등대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길 양편에 붉게 익은 산딸기를 따먹으며
    아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지만, 길은 얼마나
    멀까. 함께 내린 해군은 벌써 온데 간데 없고, 아이들마저 내 발걸음이
    느려서 답답한지 저희들끼리 먼저 올라갔다. 한 손은 목에, 또 한 손은
    허리에 지지대 삼아 받히고, 절뚝거리며 올라가는 길이 꼭 패잔병들
    같다고 웃었다. 하지만 나도, 친구와 동료도 낙동강 탐사 과정을 함께
    지켜보았기에 등대까지의 길이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첫 번째 검문소에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나니 드디어 등대가 가까이 있다는 실감이 전해졌다.
    이젠 정말이지 오랜 염원의 종착지가 가까워온다는 설레임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검문소에서도 한참을 걸어야 해서 지치고 아픈 다리는 더욱
    걸음을 더디게 했지만, 등대가 가까워온다는 현실감에 아프다는 생각을
    잊었다. 진흙길이니까 바지를 둥둥 걷고 오라던 직원의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친구와 동료는 혹시라도 내가 미끄러져 넘어질까 무거운
    짐을 지었지만, 노심초사 날 양편에서 붙들며 바지를 버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곧 석양이 질 듯한 시각이 되어서야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희미해진 풍경 속으로 가덕도 등대의
    흰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가파른 내리막길이 다소 힘겨웠지만,
    언덕 아래 검문소 바로 앞에 서 있는 군인과 강아지를 보고 힘을 내었다.
    천천히, 천천히...... 내 발걸음은 무척 더뎠다. 벌써 도착해 검문소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는 아이들도 힘을 내라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고, 볼펜을 쥘 힘도 없어 대신
    써준 내 인적사항에 사인을 하고 등대로 들어섰다. 이미 어둠을 두텁게
    내려앉기 시작해 바다 풍경을 볼 수 없었지만,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오래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준비했고, 아이들은 방 청소를 말끔히
    해 놓았다. 땀과 진흙이 묻은 옷을 벗어내고 세수를 했다. 시원스레
    나오지 않은 물이지만 물 사정이 좋지 않은 섬에서 이렇듯 맑은 물이
    나오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김치와 몇 가지의 밑반찬이 전부인
    밥이지만 너무 맛있었다. 텔레비전 앞에 붙잡힌 아이들을 불러 베란다에
    나가서니 어두워진 밤바다를 순찰하는 배 한 척과 등대에서 왔다갔다하는
    불빛 속으로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밤새 파도소리를 듣다 갈
    거라는 친구와 동료를 베란다에 두고 침대에 누웠으나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날 짧은 시간이나마 낙동강 물이 흘러들어 다른
    물들과 화합하여 있을 등대 주변을 둘러보자면 잠을 자야했다.



    새벽 일찍 눈을 떴다. 모두 늦게
    잠이 들었는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커튼을 열고 베란다로
    나갔다. 철썩이며 잠을 방해하던 지난 밤의 파도소리는 떠오르는
    태양 빛에 잠잠해진 듯, 수평선을 중심으로 환하고 찬란한 세상이 열리고
    있었다.



    밝아오는 바다 위로 몇 척의 배들이
    떠 있었다. 드넓은 남해바다에 점처럼 떠 있는 배들 사이로 모터를 단
    또 한 척의 배가 지나가고, 태양은 점점 위로 떠올라 눈이 부셔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깊이 잠든 줄 알았던 딸아이가 가장 먼저
    일어나 베란다로 나와 내게 긴 뽀뽀를 남겼고, 친구가 일어났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등대 주변을 둘러보자던 동료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등대에서
    맞은 아침은 환상적이었다. 바다와 단애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과 바다의 푸른빛, 그리고 고요.



    결국 우리는 일찍 출발하지 못했다.
    아침을 먹고, 돌아가며 씻고, 그리고 느긋하게 고요하고 깨끗한 남해바다를
    구경하며 차까지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방명록에 돌아가며
    하고 싶은 말을 남겼고, 치어 방류를 위한 모금함에 대한 얘기도 나누어가며
    오전을 깨끗한 등대에서 즐겼다. 다음 사람을 위해 설거지며 베란다
    물 청소도 했고, 방까지 쓸었다. 숙소를 개방해준 해양수산청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고 은혜임을 아이들에게 주지시켰다. 고마워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사람에서뿐만 아니라 자연에까지 이르렀으면...... 낙동강
    탐사를 끝내고 난 내 삶의 느낌처럼, 아이들도 가덕도에서 어떤 지극한
    감정을 느꼈으면......



    돌아오는 길에 만난 큰엉겅퀴, 때죽나무,
    산괴불주머니, 찔레, 씀바귀, 우산나물, 물푸레나무, 개옻나무, 둥굴레,
    괭이눈, 칡, 싸리, 고삼, 붉은토끼풀, 취, 애기똥풀, 으아리, 고마리,
    미나리아재비, 고란초, 윤판나물, 개불알꽃과 그 외 이름을 알지 못하는
    많은 식물들과 흙탕물에 짝짓기를 하던 청개구리와 막 날갯짓을 시작한
    나비와 나방들, 섬을 지키는 군인들과, 모듬살이로 평화로워 보이던
    주민들 생각으로 완쾌를 기다리는 병상생활에서 나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 체험기간 : 5월18일∼19(1박/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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